Abraham · 갈라디아서 3:6–16 · 창세기 12:3 · Day 21

약속의 자손 그리스도 — 한 사람을 통해 만민이 복을 받다

The Promised Seed Is Christ — Through One Man All Nations Are Blessed

아브라함 · Day 21
약속의 자손 그리스도 — 한 사람을 통해 만민이 복을 받다 갈라디아서 3:6–16 · 창세기 12:3  |  The Promised Seed I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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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이 가나안의 언덕 위로 부드럽게 번질 무렵, 아브라함이 어린 이삭의 손을 잡고 멀리 동쪽 지평선을 가리킨다. 노인의 떨리는 손끝에서 시작된 한 줄기 황금빛 길이 사천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흘러간다 — 이삭, 야곱, 다윗, 그리고 마침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멈춰 선다. 모든 민족의 얼굴이 그 길 끝의 별빛 아래 조용히 모여드는, 거룩한 약속의 강물.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 갈라디아서 3:8–9, 16

사천 년 전, 한 노인의 천막 위로 한 약속이 떨어졌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12:3). 당시 아브라함의 곁에는 자녀가 한 명도 없었고, 그가 가진 것은 이방의 광야 한 자락과 늙어가는 아내뿐이었습니다. 어떻게 한 자식도 없는 노인이 "모든 족속의 복"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 한 줄을 가리켜 "복음의 첫 번째 선포"라고 부릅니다(갈 3:8). 곧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은 단순한 가족사적 축복의 예언이 아니라, 장차 한 사람을 통해 온 인류에게 의(義)가 주어질 것을 미리 보여 주신 복음의 씨앗이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받은 약속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속을 믿었고, 그 믿음이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창 15:6). 그리고 사천 년이 지난 어느 변방의 마구간에서, 그 약속은 한 아기의 울음소리로 마침내 육신을 입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3:16에서 한 단어 위에 모든 무게를 싣는 장면은 놀랍습니다. "자손들"이 아니라 "자손"이라고 하나님이 단수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약속은 수많은 후손에게 분산되어 흩어진 복이 아니라, 단 한 사람 — 그리스도 —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는 한 줄기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평생 바라본 그 별들과, 평생 가슴에 품었던 그 가나안 땅과, 결코 자기 발로 다 닿지 못했던 그 본향은, 결국 모두 한 분 —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흘러가는 약속이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일생을 신약의 빛 아래 다시 읽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놀라운 진실입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위대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위대한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끝에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한 분이 서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은 동일한 한 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시간의 다른 쪽 끝에서, 같은 별을, 같은 약속을, 같은 그리스도를.

별빛 아래 아브라함과 아기의 그림자

밤하늘 가득한 별들 사이로 한 줄기 빛이 강물처럼 흘러내려 베들레헴의 작은 마구간 위에 멈춘다. 그 빛 아래 아브라함의 그림자와 한 아기의 그림자가 같은 윤곽으로 겹쳐진다 — 사천 년의 약속이 마침내 한 점에서 만나는 거룩한 새벽.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너무 작아 보일 때마다 낙심합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한 줌의 모래만 한데, 어떻게 이 작은 믿음으로 큰 약속을 붙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줍니다 — 신앙의 크기는 약속의 크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주신 분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은 사천 년이 걸려서야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그는 그 약속의 그림자 한 자락만 본 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 그 그림자가 결국 그리스도의 얼굴이었음을 신약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줍니다. 오늘 당신이 붙들고 있는 한 줄의 약속, 한 마디 응답되지 않은 기도, 한 가닥 희미한 소망 —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될지 당신은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주신 분이 사천 년의 시간을 끊어진 적 없이 이어 오셨다면, 당신의 한 줌 믿음 또한 결코 헛되이 흩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하나 — 갈라디아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신분을 알려 줍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그의 자손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단지 한 신앙인이 아니라, 사천 년 전에 시작된 약속의 줄에 이름이 적힌 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오늘 드리는 그 떨리는 기도, 당신이 오늘 견뎌 내는 그 작은 순종, 당신이 오늘 붙드는 그 한 줄 말씀 — 그 모든 것이 아브라함이 바라본 같은 별빛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당신은 그 약속의 강물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강물 안에 발을 담그고 함께 흘러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작은 믿음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천 년의 약속이 당신 안에서 한 번 더 호흡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본 별 하나가 사천 년을 흘러 한 아기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한 줌 믿음도 결코 헛되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약속을 주신 그분의 크기로 당신의 신앙을 다시 재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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