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안, 양식 자루 앞에 엎드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늙은 야곱 — 움켜쥐고 있던 마지막 아들 베냐민의 손을 놓아야 하는 아버지의 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 창세기 42:36; 43:13–14
이 장면은 야곱 생애의 가장 아픈 새벽 중 하나입니다. 요셉을 잃은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시므온은 애굽에 볼모로 잡혀 있으며, 기근은 집안의 양식을 다 삼켰습니다. 이제 애굽의 총리는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 합니다. 야곱에게 베냐민은 단지 막내가 아니었습니다 —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다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고, 잃은 요셉의 유일한 친동생이었습니다.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이 한 문장에 20년 동안 묻어 두었던 슬픔이 모두 터져 나옵니다. 그는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잃지 않기 위해. 그러나 움켜쥘수록 집안 전체가 굶주림으로 쓰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유다가 베냐민을 담보하겠다고 자청하며 "나로 보증이 되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때 야곱은 긴 침묵 끝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엘 샤다이)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이 마지막 문장은 포기의 말이 아니라 항복의 기도입니다. 야곱은 평생 움켜쥐는 자(야곱)였습니다 — 장자권을, 축복을, 재물을, 가족을. 그러나 이제 180년 인생의 끝자락에서 그는 마지막 남은 것조차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습니다. 야곱이 진정한 이스라엘이 되는 길은 얍복강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밤 한 번 더 완성됩니다 — 이제 더 이상 움켜쥘 힘이 남지 않은 자의 항복으로.
새벽, 낙타와 나귀에 오른 베냐민과 형들이 애굽을 향해 떠나는 순간 — 천막 문 앞에 서서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바라보는 야곱
우리에게도 "베냐민"이 있습니다. 더 이상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한 사람, 그 한 가지. 일일 수도 있고, 관계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손에 꼭 쥐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움켜쥘수록 삶의 다른 부분들이 굶주려 갑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그 "베냐민"을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놓는 것이 잃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움켜쥐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미 절반쯤 잃은 상태입니다 —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은 삶이 아니니까요. 오늘 당신이 가장 붙들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 올려 드리십시오.
야곱의 "잃으면 잃으리로다"는 훗날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와 예수님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로 이어지는 믿음의 항복 문장입니다. 이 항복은 체념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 은혜를 베푸사"라고 먼저 기도한 후에 나오는 결단입니다. 당신의 항복도 그러해야 합니다 — 먼저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한 후에야 당신의 베냐민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훗날 그 베냐민뿐 아니라 죽은 줄 알았던 요셉까지 되찾게 되듯, 하나님의 손에 내려놓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움켜쥔 야곱이 놓을 때 비로소 이스라엘이 됩니다.
당신이 가장 놓지 못하는 그것 — 오늘 하나님 손에 올려 드리십시오.
"잃으면 잃으리로다"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