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 궁전의 석주 사이, 바로의 금빛 왕좌 앞에 서 있는 백발의 야곱. 지팡이를 짚은 늙은 순례자가 손을 들어 애굽 최고 권력자를 축복한다 — 세상의 모든 영광이 한 나그네의 기도 아래에서 고개를 숙이는 장엄한 순간.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 창세기 47:7–10
본문은 짧은 네 절이지만 엄청난 무게를 지닙니다. 당시 애굽의 바로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반면 야곱은 형의 얼굴을 피해 도망쳤던 사람, 라반의 집에서 이십 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던 사람, 사랑하던 라헬을 베들레헴 어귀에 묻고, 아들 요셉을 잃은 줄 알고 이십이 년을 울었던 늙은 나그네였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섰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적습니다 —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히브리서 7장 7절은 말합니다 —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는다." 그 기준에 따르자면 여기 이 장면에서 바로가 낮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언약 백성의 족장이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물었습니다 —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은 그냥 "백삼십 세" 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애굽 궁전 한복판에 서서, 금과 보석과 권력의 한가운데에 서서도 자신을 "나그네" 로 소개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말입니다 —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은 자기 인생을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속이고, 속고, 도망치고, 씨름하고, 자식을 잃고, 또 되찾은 그 비틀린 굴곡을 그는 "험악한 세월" 이라고 요약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험한 세월을 건너온 노인이, 세상 권력자 앞에서 굳건히 손을 들어 축복을 선포합니다. 인생의 굴곡은 축복의 자격을 앗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굴곡을 통과한 사람만이 진짜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바로의 왕관 옆으로 떨어지는 야곱의 축복의 손, 그리고 대궐 바닥에 그려진 한 줄의 그림자 —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복을 받나니" 라는 히브리서의 고백이 돌 위에 새겨진 듯하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지위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축복할 수 있는 자" 는 직함이나 재산이 아니라, 언약의 은혜 아래 살아온 세월로 평가됩니다. 당신이 오늘 직장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자녀의 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나는 별 것 아닌 사람" 이라 생각할 때 —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 이름으로 세상 어떤 자리에서든 축복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야곱처럼 지팡이를 짚고 들어가더라도, 당신의 손에 있는 축복은 세상의 왕관보다 무겁습니다.
또 하나 — 야곱은 자기의 험악한 세월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포장하지 않고 "험악했다" 고 말했고, 동시에 그 모든 세월이 "나그네 길" 이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도 숨기고 싶은 구간이 있을 것입니다. 실패한 사업, 무너진 관계, 오래된 후회. 그것들을 지우려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건너온 순례의 이정표입니다. 험한 세월을 인정하되 그것에 묶이지 말고, 그 세월을 건너 여기까지 데려다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며 오늘, 누군가에게 축복을 선포하는 입을 여십시오. 험한 세월을 통과한 사람의 축복이 가장 깊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늙은 순례자가 세상 최고의 권력자를 축복했습니다.
당신의 험한 세월은 축복의 자격을 앗아가지 않습니다 — 오히려 축복의 깊이를 더할 뿐입니다.
오늘, 낮아 보이는 당신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위해 손을 들어 복을 빌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