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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돌길 위에서 바나바가 사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사도들에게 그를 소개하는 장면 — 한 사람의 신뢰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주를 만나 주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것을 자세히 말하니라" — 사도행전 9:26-27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그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공동체의 반응은 냉담 그 이상이었습니다. "다 두려워하여"—이 표현에는 당연한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목격하고 동의했으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성도들을 끌어다가 옥에 가두던 자였습니다. 그 기억이 생생한 공동체에게 "회심했다"는 사울의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습니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에 바나바가 등장합니다. 그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갔습니다. 이 짧은 행동 안에 엄청난 용기와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바나바는 단순히 사울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뢰를 걸고 사울의 보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야기와, 다메섹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한 사실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아직 아무도 가진 적 없는 자리에서 홀로 있을 때, 손을 내밀어 그를 공동체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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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 앞에서 사울의 회심 이야기를 설명하는 바나바 — 의심하는 눈빛들 사이에서, 한 사람의 증언이 공동체의 문을 열고 있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사울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사도 바울의 사역 전체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 때문에, 또는 낯섦 때문에 공동체 안으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요. 그때 바나바 같은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두려워할 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대신 전해 줄 수 있는 사람.
신뢰는 위험을 감수합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평판을 걸고 사울의 편을 들었습니다. 만약 사울이 위장 침투자였다면, 바나바도 함께 위험에 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증거를 믿었습니다. 사람의 변화를 인정하고, 그 가능성을 공동체 앞에 중보하는 것—이것이 위로의 아들 바나바의 소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보증인이 되어 줄 수 있습니까?
모두가 두려워할 때, 바나바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뢰가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