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와 함께 마가복음을 쓰는 마가 요한 — 한 번 실패했지만 바나바의 신뢰로 다시 일어선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하는 조용한 밤의 장면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사도행전 15:37,39; 디모데후서 4:11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선 이유는 마가였습니다. 1차 선교여행 중 밤빌리아에서 도중에 돌아간 마가(행 13:13)를 바울은 신뢰하지 않았지만, 바나바는 그를 다시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 결과 두 선교사는 헤어졌고, 바나바는 이후 성경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바나바는 마가 한 사람을 위해 바울이라는 가장 탁월한 동역자를 잃은 셈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바나바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합니다. 바나바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선 마가는, 훗날 바울 자신이 "나의 일에 유익한 자"(딤후 4:11)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가복음의 존재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마가복음은 베드로의 설교를 마가 요한이 기록한 것입니다. 만약 바나바가 마가를 포기했다면, 마가는 아마도 복음서를 기록하는 위치에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결단이, 신약성경의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 길을 열었습니다. 바나바는 성경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의 사역의 열매인 마가복음은 오늘도 온 세계에서 읽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뒤에서 사람을 세우는 자의 유산입니다.
노년의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기록하는 장면 — 한때 버렸던 사람을 다시 찾는 화해의 고백
바나바의 삶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그 가능성으로 봅니까, 아니면 과거의 실패로 봅니까?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배신이 그 사람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바나바가 마가를 보았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십니다.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 가능성으로 봐 주십니다. 오늘 당신이 포기했거나 포기당한 누군가가 있다면, 바나바처럼 다시 한 번 손을 내미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바나바는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증거를 살아서 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가를 믿었고, 그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신앙의 결단은 당장의 결과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가 심은 씨앗이 꽃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당신이 포기하고 싶은 누군가, 혹은 어떤 일이 있습니까? 바나바처럼,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사람을 믿고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나바가 마가를 붙들었기에 마가복음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