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 가의 늦은 오후, 세례 요한이 한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강 너머를 가리키며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말한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두 명의 제자가 — 안드레와 이름 없는 한 청년이 —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강물 위로 길게 늘어진 늦은 오후의 황금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물 위에 부드럽게 비추고, 한 사람의 일생이 그 한 발자국 위에서 영원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 요한복음 1:35–39
요한복음의 첫 장 끝에 한 작은 장면이 있습니다. 요단강 가에서 세례 요한이 자기 곁에 선 두 제자에게 한 분을 가리키며 한 마디 말합니다 —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6). 그 한 마디를 들은 두 제자는 그 자리를 떠나, 그 한 분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본문은 두 사람의 이름 가운데 한 사람만 밝힙니다 — "그 둘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요 1:40).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끝까지 한 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기 교회의 한결같은 전승은 그 무명의 한 청년이 바로 이 복음서를 쓴 사도 요한이라고 가리킵니다. 자신의 일생의 첫 한 발자국을 적으면서, 그는 자기 이름을 한 자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 자신의 첫 등장은 그렇게 한 분의 뒤를 따라가는 한 무명의 그림자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한 침묵 안에 한 사도의 평생의 자세가 미리 새겨져 있습니다.
이 짧은 본문 안에 한 분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던지신 한 마디가 있습니다 — "무엇을 구하느냐"(요 1:38). 요한복음 전체에서 한 분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던진 그 첫 한 마디. 일생을 영원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한 만남의 첫 한 마디는, 화려한 한 가르침이 아니라 한 영혼의 가장 깊은 자리를 향한 한 정직한 질문이었습니다 — "너는 정말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두 청년의 답이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한 가지 신학적 질문이나 한 가지 기적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요 1:38). 한 분의 한 가르침을 청한 것이 아니라, 한 분이 머무시는 그 자리를 청한 것입니다. 한 분과 함께 한 시간을 머무르는 일 — 그것이 그들의 첫 갈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분의 답이 영원합니다 — "와서 보라"(요 1:39). 와서 직접 만나라, 와서 직접 머물러라, 와서 직접 한 시간을 함께 보내라. 그리고 본문의 마지막 한 줄이 한 일생의 가장 거룩한 한 줄로 새겨집니다 —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요 1:39). 그 오후 네 시 — 한 사도가 평생 잊지 못한 한 시간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늦은 오후의 한 작은 방, 한 분이 앉아 계신 그 자리 곁에 두 청년이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창문 밖으로 기울어 가는 햇빛이 한 분의 어깨와 두 청년의 얼굴 위로 부드럽게 드리워지고, 한 잔의 물과 한 조각의 빵이 단순한 상 위에 놓여 있다. 한 평생을 가져갈 한 시간 —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첫 한 발자국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 한 분과의 첫 만남은 한 가지 거룩한 사건이 아니라 한 시간의 머무름이라는 것. 우리는 종종 한 분과의 만남을 한 가지 큰 사건 — 한 가지 기적, 한 가지 회심의 한 순간 — 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의 한 새벽은 다릅니다. 그 한 사도가 평생 잊지 못한 그 첫 한 만남은, 한 분과 함께 머물렀던 한 오후의 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가지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한 가지 큰 가르침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한 분 곁에 한 시간 함께 앉아 있었던 그 평범한 한 오후 — 그 한 시간이 한 사도의 평생의 첫 자리였습니다. 오늘 당신의 신앙이 한 가지 큰 사건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 한 분은 한 사건으로만 오시지 않습니다. 한 분은 한 시간의 머무름으로 가장 깊이 오십니다. 오늘 당신의 일정 안에서 한 시간을 그분 곁에 비워 두십시오. 그 평범한 한 시간이 당신의 일생의 한 첫 자리가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 그분의 첫 한 마디 "무엇을 구하느냐"(요 1:38)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들립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가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묻지 않은 채로 살아갑니다. 한 분 앞에 한 가지 기도를 올리면서도, 사실 우리가 진짜로 구하고 있는 것이 한 가지 답이 아니라 한 가지 안심이고, 한 가지 응답이 아니라 한 가지 자기의 인정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분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 "너는 정말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이 한 마디 앞에 한 번 정직하게 자기의 가슴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리고 두 청년의 답을 입술로 한 번 따라 해 보십시오 —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한 가지 응답이 아니라 한 분의 자리를 구하는 그 한 마디 안에서, 당신의 신앙은 비로소 한 깊이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후 네 시 — 한 사도가 평생 잊지 못한 그 한 시간이, 오늘 당신의 한 시간으로도 시작됩니다.
한 분은 한 사건으로만 오시지 않습니다 — 한 시간의 머무름으로 가장 깊이 오십니다.
"너는 정말 무엇을 구하고 있느냐" — 한 응답이 아니라 한 분의 자리를 구하십시오.
오늘, 당신의 일정 안에서 한 시간을 그분 곁에 비워 두십시오. 그 평범한 한 시간이 당신의 일생의 첫 자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