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다 언덕에서 멀찍이 서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 —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그 사랑의 눈빛이, 석양 빛 아래 선명하게 남아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요 또 이 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 마가복음 15:40-41
마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을 기록하면서,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이름을 조용히 적어 내려갑니다. 열두 제자 중 그 자리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은 요한 단 한 명뿐입니다. 그러나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들이 서 있던 곳은 '멀리서'였습니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로마 군인들이 집행하는 처형 현장 주변에 있다는 것 자체가 당시 사회에서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등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마가는 이 구절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가장 먼저 언급합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네 복음서는 십자가 현장의 목격자 명단에서 한결같이 막달라 마리아를 맨 앞에 세웁니다. 그녀가 '섬기던 자'였다는 표현도 눈길을 끕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디아코네오(διακονέω)'—섬기다—라는 이 단어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섬김의 리더십 바로 그것입니다. 그녀는 은혜를 받은 자에서 은혜를 흘려보내는 자로 이미 성장해 있었습니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십자가 그림자를 마주한 여인의 뒷모습 — 떠나지 않는 사랑의 고요한 증거
때로 우리는 고난 받는 사람 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발길을 돌립니다.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있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멀리서라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녀는 그것을 다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미 사랑의 행위입니다.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이 때로는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 더 큰 위로가 됩니다.
지금 당신 주변에 고난의 자리에 홀로 선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이 그 자리에 나타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메시지입니다.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곁에 머물렀던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가장 어두운 시간 곁에 머물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섬김의 본질이며, 사랑의 가장 순수한 형태입니다.
제자들은 떠났지만, 여인들은 멀리서 바라보았습니다.
사랑은 위험 앞에서도 등을 돌리지 않습니다.
오늘, 당신은 누구의 십자가 곁에 서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