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정원에서 예수님께 돌아서는 막달라 마리아 —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는 결정적인 장면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 요한복음 20:14-16
마리아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예수님이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눈물로 가득 찬 눈은 가장 기다리던 분을 보면서도 그분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먼저 물으셨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이 질문은 그녀의 슬픔을 꾸짖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향해 건네는 부드러운 손길이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먼저 알고 계시며, 그 찾음 앞에 조용히 나타나십니다.
마리아는 그를 동산지기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혹시 시신을 옮겼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어디 두었는지 알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한마디 속에 그녀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죽은 몸이라도 곁에 두고 싶다는 사랑. 그런데 그 순간, 주님은 단 한 마디를 발음하십니다. "마리아야."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마리아는 그 음성을 단번에 알아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14). 이름을 불러 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마리아가 "랍오니!"라고 외치며 무릎을 꿇는 장면 — 선생님이라는 히브리어 고백과 함께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는 부활의 아침
마리아는 예수님이 바로 앞에 계셨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시야를 가렸고, 슬픔이 판단을 흐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리아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슬픔과 혼란 속에서 주님이 바로 곁에 계심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순간에도 우리 이름을 알고 계시며, 때가 되면 부르십니다. 그 음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귀를 열고 기다리십시오.
마리아가 "랍오니!"라고 외쳤을 때,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선생님"이라는 이 히브리어 고백 속에는 죽음도 끊지 못한 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과 나 사이는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부활은 그 관계의 영원성을 확인해 준 사건입니다. 오늘 당신은 주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멀리 계신 분으로 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은 수많은 사람 가운데 "마리아야" 하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당신의 이름도 그분은 알고 계십니다.
슬픔이 눈을 가릴 때, 그 음성에 귀를 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