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어두운 감옥 방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로도 편지를 쓰며 미소 짓는 바울 —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눈 속에는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담겨 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빌립보서 4:11–13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 감옥에서 씁니다. 그는 지금 자유롭지 못하고, 재판을 앞두고 있으며, 결국 순교로 생을 마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를 전하면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여기서 "자족"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타르케이아(αὐτάρκεια)'는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이 즐겨 쓰던 단어였습니다.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독립적 평정심을 뜻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철학적 자기 단련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운" 것입니다 — 수많은 고난의 경험 속에서 하나씩 터득한 것입니다.
13절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자기 자랑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종종 오해되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기 긍정으로 사용되지만, 바울의 의도는 정반대입니다. 그는 "내 능력으로"가 아니라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배부름도, 배고픔도, 풍부도, 궁핍도 — 그 모든 형편을 견디고 감사하게 살아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이 주시는 힘 때문입니다. 이 비결이 바울의 일체(一切), 즉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삶의 핵심입니다.
폭풍우 치는 바다 위 배 갑판에 홀로 서서 양손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바울의 뒷모습 — 거센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신성한 빛줄기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 이것은 타고난 성품이 아닙니다. 바울도 배워야 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다 살아난 경험, 세 차례 파선, 감옥, 굶주림 — 그 모든 것이 자족의 교실이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겪는 어려움이 쓸모없는 고통이 아닌, 자족을 배우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궁핍이 내일의 평안을 가르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형편이 나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 시작할 때, 우리도 바울처럼 그 비결에 가까워집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 오늘 당신 앞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습니까? 바울의 고백은 자기 의지력이나 긍정적 사고의 힘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철저히 관계적 고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분에게서 힘을 공급받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그분의 힘으로 오늘을 살 수 있습니다. 먼저 그분께로 가십시오. 능력은 거기서 옵니다.
자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입니다.
배부름도, 배고픔도, 그분 안에서는 모두 감사의 재료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그 형편 속에서도 능력 주시는 자를 바라보고 있습니까?